비고츠키 생애
비고츠키의 이론은 교육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비고츠키 생애와 업적을 통해 개괄할 수 있다. 유대계 러시아 태생의 비고츠키는 은행지점장인 아버지와 교사교육을 받은 양육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대인이었던 부모는 자녀들에 대한 배려가 컸다. 대가족이었던 이 가정은 문화적이고 지적으로 자극적인 환경이었으며 격려와 활기넘치는 토론이 가득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았고,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 근거했다고 한다. 이것이 천재성을 지닌 소년의 사고에 큰 자극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유대인 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는데 동료 학습자와 철학과 문학, 역사, 예술 등을 즐기며 토론을 즐겼으며 이 때문에 꼬마 교수라고 불렸다. 이러한 특성은 전생애에 걸쳐 이어진다. 성인이 된 이후 동료들은 그를 기억력이 대단한 사람, 속독하는 독서광, 많은 연구를 하는 학자로 기억한다.
비고츠키의 대학 시절 이후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학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는다. 모스크바 대학을 다니는 동안 비공식 교육기관인 shanyavskii 대학을 다녔다. 이곳에서 비고츠키는 역사와 철학을 전공했는데 이것이 그의 굉장한 관심 분야였다. 그 외에 문학과 심리학, 예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Gomel로 귀향하여 사범대학에서 심리학 실험실을 만들어 경력을 쌓는다. 그곳에서 1926년에 발간된 <교육심리학>의 기초가 될 만한 강의를 진행한다. 게다가 그는 러시아어와 독일어, 영어, 히브리어, 불어, 라틴어 등 8개 국어를 했기에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나오던 철학이나 심리학 등의 주요 연구 업적에 대한 방대한 독서가 가능했다.
1920년에는 결핵에 걸려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24년에 결혼해서 두 딸을 낳았다. 그의 딸에 의하면, 비고츠키의 가정은 구성원들 간의 존중과 애정이 가득했다고 회고한다. 저녁이면 테이블에 앉아 차를 즐기고 연극에 대한 토론, 시 낭송, 유머를 즐겼다고 한다.
그는 독서와 강의, 저술활동을 끊임없이 진행했다. 이는 그의 인생에 큰 업적이었으며, 1924년에 발표한 <조건반사적 조사방법과 심리학적 조사방법>이 반향을 일으키며 많은 동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모스크바 심리학 연구소에 초빙되어 새 경력을 펼친다. 이후 10년간 열정적이고 생산적인 연구 활동을 벌인다. 소중한 동료들을 만나 비고츠키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연구소 설립, 심리학자와 교사들을 훈련하는 활동, 강의, 저작 활동들을 강행한다.
생을 마감했던 달까지 쉬지 않고 저술 활동을 진행하여 <사고와 언어>의 마지막 장을 적는다. 그러면서 결핵은 심해졌고, 1934년 6월에 숨을 거둔다.
학문적 배경과 업적
비고츠키는 많은 현상들을 심리학적 요소로 환원하여 분석하면서도 복잡한 지각, 문제해결 행동은 설명하지 못하는 행동주의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형태주의 심리학자들도 유사하게 바라보았다.
비고츠키에게 있어 '설명'이란 특수기능의 기초인 두뇌 기제 확인, 단순한 형태와 복잡한 형태간의 관계 확립, 그 행동 형태의 발달사에 관한 설명, 또 그 기저에 깔린 사회적 상황을 자세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 비고츠키도 물론 이 모든 목표를 학문적으로 다 이룬 것은 아니지만, 현대 심리학이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많은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심리학의 공식적 교육을 받았다고 하긴 어렵기 때문에 종종 해당 분에에서 외부인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지닌 심리학과 아동발달에 대한 독창적 사고는 여러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의 이론에는 마르크스주의적 사고가 짙었다.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을 심리학에 적용했다. 막스에 의하면 사회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변화, 물질적인 삶의 모습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변화를 준다. 비고츠키는 이를 심리학적 의문으로 연계하여 보려고 했으며, 인간 노동과 도구에 관한 엥겔스 개념을 다듬었다.
엥겔스에 의하면, 인간의 도구 사용과 노동이 자연을 변화시키고 그러면서 인간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본다. 이때 노동 도구는 자연과 인간을 변화하는 매개 수단이 되는 것이다.
비고츠키의 주장
비고츠키는 인간, 환경의 관계 속에서의 '매개' 개념을 도구 뿐만이 아니라 기호의 사용으로 확장했다. 도구 체계와 함께 언어나 쓰기, 수 체계와 같은 기호도 역사 발달과정이 내재된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 기호 체계는 그 사회 수준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기호 체계를 내면화하면서 행동 변화가 일어나고, 이 내면화는 개인 발달의 초기와 후기 형태에서 교량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문맹,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장애, 실어증을 갖는 사람에 대한 교육과 치료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죽기 전에는 교육의 문제에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이에 관해 저서를 집필하며 강의하기도 했다. '근접발달대'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아동의 발달을 정확히 이해하고 진단하여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교육 방식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과 업적을 구성할 때 비고츠키가 지닌 기본 가정은 개인의 고등정신기능의 발달 이해를 위해선 개인이 처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다룰 때 '개인간 정신 기능'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 영향력을 밝히는 데 힘썼다. 특히 개인간 정신 기능이 개인내 정신 기능으로 변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내면화'와 '근접발달대'를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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