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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플라톤의 교육

by 슬로우 트레인 2023. 9. 16.

그리스의 교육 -플라톤과 교육

 

그리스의 교육 중에서도 아테네의 교육은 구교육과 신교육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B.C 6세기에서 5세기에 해당하는 구교육은 운동을 기반으로 한 체력 교육을 중심으로 한다. 전쟁이나 국가 유지를 위한 활동이기에 이를 교육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견이 있다. 그렇지만 국력이 최고치에 이르렀던 시기라는 특징 아래 원활하게 성인기에 정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준비를 국가에서 일부 담당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교육이 대신한다.

 

 

 

 

학교 책 사진

 

 

그리스 신교육 - 소피스트

 

B.C 5세기 후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고, 농업 중심 사회였던 경제 상황을 해양으로 확장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이후 전쟁으로 인한 국력 향상으로 아테네는 그리스 중심지가 됐다. 나라가 안정기에 들자 국가는 교육과 문화에 힘쓸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것이 외국에서 유입된 소피스트이다. 특히 앞서 설명한 민주주의 시스템이 소피스트의 등장과 연관이 깊은데,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정치 권력을 획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소피스트들은 청년들이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표명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달변가로서의 훈련을 교육했다. '지혜가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소피스트들은 아테네 청년들에게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수사학 교육을 제공하며 교사의 역할을 한 셈이다.

 

소피스트는 이론이 매우 다양하고 많았는데 훌륭한 자도 있는가하면, 사기꾼이라고 부를 만한 자들도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중 그리스의 교육은 피타고라스 학파 소피스트들의 영향 또한 매우 컸다. 이들은 과학적인 사상 안에서 기하학과 산술, 천문학과 화성학 등을 교육했다. 

 

그러나 외국인이 아닌 아테네 출신이 유명한 소피스트가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테네 출신의 소크라테스이다. 그를 기점으로 내국인 교육자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리스의 학교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한 교육은 의미 있는 과정이었지만 외국인 소피스트처럼 체계가 빈약한 교육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교육의 일관성과 연속성 면에서 미흡했으며 질문과 답을 이어가는 토론에 치우쳐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을 오랜 기간 교육하고 인재로 양성하기에는 효율적인 시스템은 아니었다. 이에 B.C 4세기경 학교가 세워진다.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와 교육

 

B.C 4세기경에 설립된 학교에서는 수사학과 수학을 바탕으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공식적인 교육 지도를 시도한다. 이소크라테스가 세운 학교와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가 알려져 있다. 이소크라테스는 실용에 기반한 수사학과 철학과 문체나 어휘 같은 것을 가르쳤다. 대략 4년에 걸쳐 주제 중심의 토론과 글쓰기를 배우는데 당시 유명한 사건, 역사적으로 짚어볼 만한 사건들을 대상으로 했다. 실제 논쟁을 오랜 기간 접하면서 학생의 말하기와 쓰기 능력을 향상시켰다.

 

 

 

 

플라톤의 학교와 교육의 개관

 

이소크라테스의 학교 교육 과정이 이론과 함께 실제 논쟁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플라톤의 학교는 이론을 중요시했다. 특히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만큼 스승의 문답법을 활용하여 세계와 인간 진리에 대해 탐구하고 발견하기가 주된 교육 과정이었다. 이소크라테스처럼 특정 주제를 삼고 있는 것은 공통되지만, 학생은 끊임없이 질문과 비판을 받으며 사고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했다. 

 

 

 

 

플라톤의 교육과 아카데미아

 

신전의 이름에서 온 '아카데미아'는 서구의 최초 대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승으로부터 영향 받은 철학 교리를 기반으로 하며 기하학을 중시했다. 수학에 대한 기초가 없다면 아카데미아에 들어오기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증법을 토대로 한 문답법이나, 산술, 천문학 등을 가르쳤다. 수업료를 받았던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와는 달리 아카데미아는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했는데, 대신 상류층의 기부로 유지되었다. 주로 남성 중심의 교육이었지만 종종 여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6세에 이르면 남녀는 분리되어 교육 받는다. 여성도 체력 교육을 받았다.

 

플라톤 또한 운동을 기반으로 한 체력 교육을 중시하였다. 이에 유년기에는 신체 단련 교육과 음악 교육을 받는다. 특히 음악의 경우, 음악 속에 존재하는 수학적인 원리와 함께 이를 공부하고 감상하는 것까지 가르친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함께 하며 수학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 피타고라스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형이상학을 가르친다. 이 과정마다 일종의 시험이 있는데 여기서 탈락하는 자는 다른 진로를 제시하고 통과한 자만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속된 과정 안에서 살아남은 철인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교육과 이상적인 통치자

 

플라톤의 교육은 결국 국력을 위한 인재 양성을 핵심에 두고 있으며 이는 일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파했다. 오랜 기간을 거쳐 훈련 받아 만들어 진다고 보았다. 그 교육 속에서 수사학이나 기하학과 같은 학습만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조화롭게 만들었을 때 이상적인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려면 통치자는 지혜, 경제적인 관념, 전쟁을 이겨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1000년간 이어진다. 그러나 이후, 동로마 제국의 건국이라든가 기독교 사상의 영향 아래 비기독교 학교는 폐쇄를 명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아카데미아도 폐쇄된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학교는 신플라톤주의와 함께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어 큰 영향을 끼친다. 르네상스 이후 부흥기를 맞아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인문주의자들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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