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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화기 이후의 한국 교육

by 슬로우 트레인 2023. 9. 27.

개화기 이후 우리나라의 교육

 

개화기 이후 우리나라 교육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깊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일본세력이 한국 정치에 관여하면서 모든 정치 부서를 신설하거나 없애고 사회 분야에 심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과거 육조 중 하나였던 예조에서 살피던 교육 부문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과학법을 없애거나 관리를 등용하는 법을 개정하여 새롭게 제정하게 했고, 소학교에서 교과서를 편찬하게 하여 이에 실권을 가져갔습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 교육제도가 복잡하다는 이유를 들어 시범교육을 실시하게 지시했습니다. 일본의 독선적인 명령과 정책은 빠르게 식민지 교육제로 유입되어 정착될 뻔했으나 우리나라의 항일사상과 행동으로 관철되지 못했습니다. 초등교육은1906년 8월에 보통학교령이 내려지며 학제를 개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학교

 

 

일제 강점시 시대의 교육

 

1910년 8월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하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식민지 국민을 양성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에 학교장은 일본인인 경우가 많았고, 교원들은 제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자식을 차별하는 교육을 실시하거나 교육 기관에서 일본어 관련 수업을 배치하여 언어를 지배하고자 했습니다. 또 보통교육과 실업교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1924년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됐지만 한국 사람들의 입학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혜택도 공평하게 받지 못했고 문화정치의 여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립학교 설립에 관한 감시가 다소 완화된 적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삼아 민족지도자나 외국의 선교회에서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사립학교에서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을 마련했습니다. 연희전문, 보성전문, 불교전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시기에 일제는 한국인 학생이 일본으로 유학 가는 것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일본 유학생 수가 3000여 명에 달했고, 미국 유학생은 500여 명이 됐습니다. 

 

 

 

 

 

보통학교는 6년을, 중학교는 5년, 전문학교는 3년, 대학교는 4년으로 편성했으며 그 외에는 사범학교나 실업학교가 존재했습니다. 교과 과정의 초기를 보면 국사나 우리 언어에 대한 수업을 허용했는데, 1937년 이후 이 수업들을 철폐하고 학교 이름 또한 일본식으로 고치게 했습니다. 1911년에는 조선교육령을 발표하며 총독의 허가 없이 학교 설립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과서도 총독부에서 편찬할 것을 강조하며 식민지 교육제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일본은 점차 세계 정복을 위한 목적으로 병사를 준비하기 위한 의무교육제를 준비하였고 문과의 정원을 최소한으로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대신 이공계는 증원하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일본의 야욕에 맞게 교육 양상도 혼란을 겪었고 강제적으로 운영 방침이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아 학교는 폐쇄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해방 후 교육

식민지 교육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미국식 교육 체제로의 변화가 그것입니다. 이 시기 조선 교육 심의회를 구성하였고 이들은 우리나라의 현대교육 기초가 될 교육 이념이나 제도에 대한 사항을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정부 수립과 함께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학제 편성의 경우 초등 6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1~3년, 대학 4~6년으로 채택해였습니다. 1945년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이념을 근본으로 삼아 제도 개선을 하려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교육법의 교육 자치제가 실제 이뤄진 것은 1952년입니다. 의무 교육을 적극 추천하였는데 이 시기에 교재 발간이나 학제 완성 등이 일어났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지원자들을 위한 국가고사도 실시하였고, 국공립 대학 설치를 위한 방침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 이후에는 교육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교육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했습니다. 학원을 민주화하고 중앙집권적 행정 체제를 방지하기 위해 지방에 분권하였습니다. 

 

 

 

 

이후 장기종합교육 계획안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중학교 무시험 제도를 실시했고, 1968년에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됐는데 이를 바탕으로 새 역사 창조와 새로운 국민상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반공 이데올로기의 확산과 획일적인 교육 정책이 시행되어 일명 유신 교육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국민의 정신을 교육하고 강화한다는 목적 아래 교육의 내용 또한 이러한 방햐으로 개편됩니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 열기 아래 자율화의 시초가 보입니다. 1980년대 말에는 권위적이었던 교육체제를 민주화하려는 모습이 보이고 교사나 학부모 교육 운동도 일어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방 교육 자치제도가 출범하고 대학 운영의 자율성 확대 등 교육의 자율화 조치가 시행됩니다.

 

 

 

 

198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도 글로벌 경제와 무한 경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개혁이 시행됩니다. 교육 기관은 학교 제도와 교육 과정을 다양화하여 교육 질을 높이고자 했고,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나아가 교육 수요자 중심주의와 함께 경쟁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표를 제도화합니다. 이후 신교육 체제 아래 학습자 중심 교육, 자유와 평등, 교육의 정보화 등을 중심으로 학습 운영을 개편합니다. 

 

이는 과거 교육으로부터 탈피하여 변화를 가져오고 획일적이고 경직된 교육 체제를 벗어났다는 인정을 받지만 경쟁을 과열시키고 합리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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