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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우리나라의 교육 역사

by 슬로우 트레인 2023. 9. 25.

우리나라 교육 역사

 

우리나라의 교육 역사를 살펴볼 때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4세기초부터입니다.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 나라가 성립되는 과정을 담은 때입니다. 백제가 가장 먼저 삼국의 이권을 잡고, 고구려가 그 뒤를 이어갑니다. 그렇지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통일신라 시대를 맞이합니다. 세 나라의 긴장 관계는 각국을 발전시키고 통일 국가를 꿈꾸게 하는 데 영향을 줍니다. 이는 물리적인 전쟁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졌겠지만 그 기반에는 사상과 교육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작은 나라였지만 통일을 이룬 신라의 경우, 신라의 청소년들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것에 큰 힘을 기울였습니다. 삼국시대의 교육이라함은 사상과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그것은 유학과 불교입니다. 이는 7세기 중엽까지 이어지는데, 유학이라는 사상과 불교의 가르침을 위해 문자 교육부터 선행됩니다. 

 

 

 

 

 

 

1) 고구려 시대의 교육

 

고구려는 삼국 중 한족과 가장 심한 대치 관계에 있었습니다. 대립 관계였지만 그만큼 여향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 전체 시기 중 전반기 300년 동안 한사군과의 대치 상황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유교 또한 유입되었습니다. 이때의 유교는 한학을 형성하는 때였다. 따라서 고구려 유교는 자연스럽게 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로 이뤄진 오경과 사기, 한서, 후한서를 담은 삼사 등을 배우게 됩니다. 원시 유교를 탈피하여 오경 중심의 중국 한학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372년에는 국립대학 태학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고구려의 유교 사상에 대한 가치관이 드러납니다. 특히 시조 동명왕이 유리왕에게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라."고 말한 사연이 나옵니다. 이는 <서경>의 형식을 차용한 것인데, 도를 정치 기조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정치는 '왕도'인데 이는 덕으로 다스리는 '덕치', 어진 정치를 뜻하는 '인정'을 포함합니다. 결국 도로써 정치하는 것입니다. 힘보다는 도를 정치의 핵심으로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학이나 경당은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유학을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유학은 지배 이념이자 교육 과정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2) 백제 시대의 교육

 

백제를 구성하던 이들 중 마한인들은 그들이 갖고 있던 풍속이나 신앙이 있었는데 점점 유교의 영향으로 그 질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유교 의식을 생활화하기 시작했는데 중국 사료 <주서>에 담긴 백제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펼쳐보면 여인은 혼을을 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옷과 머리 모양을 다르게 하였고, 조정에 제사를 드릴 때의 옷 규정도 있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백제인들은 단정한 예법을 질서로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률 부문에 있어서도 유교 경전이 활용됐습니다. 정절과 관련된 3년상 제도나 행정단위와 군사 조직이 5분법으로 구성됐는데 이 또한 유교 오행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교 경전을 바탕으로 그 사상에서 강조하는 것들이 보편적인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백제의 유학자들은 일본에 유교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를 살펴봄으로써 백제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기>를 쓴 고흥이나 일본문화와 연관된 왕인을 보면 당시 백제에 박사라는 칭호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오경박사도 등장합니다. 이를 보면 일상에서 살펴볼 수 있는 예법이나 풍속, 행정, 정치, 교육 분야에 유학이 큰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신라 시대의 교육

 

신라에서 왕을 추대하는 제도는 유교 정치 원리와 연관이 깊습니다. 신라의 6부 촌장들은 덕망이 있다고 여겨지는 자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자격으로 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유교 사상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정치와 기술된 내용들 안에 유교와의 관련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에서 김후직이 진평왕에게 충간을 하여 사냥을 자주하던 것을 줄였다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문무왕 또한 임종에 가까웠을 때 빈본적인 정치를 할 것을 전하는데, 과세와 지나친 의무를 줄여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진평왕의 이야기에서는 충간을, 문무왕의 이야기에서는 <맹자>의 왕도 정치 이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라를 대표하는 청소년 인재들은 세속오계를 받들었는데, 그 속에서도 유교 이념을 살필 수 있습니다.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가 바로 그것입니다. 중국의 유교가 효와 충으로 대표되는데, 신라는 삼국 시대의 이권을 잡고 강대국으로 나아가야 했던 당시 상황을 미루어볼 때 국가 운명이 담긴 충을 더욱 강조한 것이 차이점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의 다른 나라인 고구려와 백제처럼 신라도 유교와 함께 불교와 도가, 전통 고신도가 어우러졌습니다. 이러한 종합적이고도 복합적인 사상들이 풍미하던 시대지만 유교가 정치와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중요할 것입니다. 국가의 기틀을 잡고 북진을 위해 인재를 양성해야 했던 신라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합니다.

 

삼국시대는 유, 불, 도가 상호 교섭되던 시기였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외래 사상으로 유입된 이것들의 영향력은 백성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유교 사상을 도입하고 활용함으로써 나라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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